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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잠겨 버린 밀물로부터
떠올라오게 될 너희들은
우리의 허약함을 이야기할 때
너희들이 겪지 않은
이 암울한 시대를
생각해다오.
신발보다도 더 자주 나라를 바꾸면서
불의만 있고 분노가 없을 때는 절망하면서
계급의 전쟁을 뚫고 우리는 살아오지 않았느냐.그러면서 우리는 알게 되었단다.
비천함에 대한 증오도
표정을 일그러뜨린다는 것을.
불의에 대한 분노도
목소리를 쉬게 한다는 것을. 아, 우리는
친절한 우애를 위한 터전을 마련하고자 했었지만
우리 스스로가 친절하지 못했단다.
후손들에게 -베르톨트 브레히트1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개개인들이지만 모두 하나의 목표를 꿈꾼다고 생각했다. 아니 단 한줄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것. 즉, 모든 사람에게 좀 더 이로운 세상을 꿈꾸는 것 말이다.
정치적, 사상적 견해는 서로 다르더라도 이러한 기본 전제는 모두 동일하게 공유한다고 생각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타인일지라도 그 근본적인 목표는 동일하고 다만 방법론에 있어서의 차이일뿐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사회에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만큼은 반드시 그러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근거없는 짧은 생각이었다. 사회적 정의가 제대로 서지 않은 사회에서 상층에 올랐다는 것은 남들보다 굳건한 신념과 의지, 좀 더 나은 사회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었다.
오히려 기회를 틈타 생각과 말을 바꾸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자를 제거하며 그럼에도 일말의 양심의 가책조차 느끼지 않는, 얼어붙은 심장과 피묻은 손을 가진 사람들이란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브레히트의 시 “후손들에게”는 이렇게 끝난다.
그러나 너희들은, 인간이 인간을 도와주는
그런 정도까지 되거든
관용하는 마음으로 우리를 생각해다오.
한가지는 확실하다. 우리는 그가 말했던 후손들이 아니다. 5세기가 지났어도 마키아벨리즘은 여전히 유효하고, 브레히트가 이야기했던 증오와 분노는 아직도 우리의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목소리를 쉬게 한다.
“우리가 잠겨 버린 밀물로부터/떠올라오게 될 너희들”이 올 때까지 과연 우리는 서로에 대한 증오와 분노 끝에 자멸하지 않을 수 있을까.
- 시집 “살아남은 자의 슬픔” 김광규 옮김 [↩]

The 후손들에게 by Woojong Koh, unless otherwise expressly stated, is licensed under a Creative Commons Attribution-NonCommercial-ShareAlike 3.0 Unported Lice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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